진(秦)나라 2세황제(二世皇帝) "호해(胡亥)"... 역사 속으로 사라진 제국(帝國)

관리자 0 188

천하(天下)가 또다시 요동치다~!. 

 

진(秦) 2세황제(二世皇帝) "호해(胡亥)"
진시황(秦始皇)의 뒤를 이어 진(秦)나라를 통치한 황제입니다.
그는 진(秦)의 제32대 왕(王)이며,
제 2대 황제(皇帝)로

시황제(秦始皇)의 26번째 막내아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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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210년 19세로 즉위 하자마자 207년 죽을 때까지
4년 간 실세였던

환관(宦官) "조고(趙高)"가 섭정(攝政)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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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통일 진(秦)나라 지도*


시황제(始皇帝)가 전국 순행 중

병에 걸려 유서(遺書)를 내렸을 당시,
황태자(皇太子)인 "부소(扶蘇": 진 2세황제의 이복 형)에게
황위(皇位)를 이으라고 적혀 있었으나,
시황제(始皇帝)가 세상을 뜨자,
승상(丞相) "이사(李斯)"와 환관(宦官)인 중거부령(中車府令) "조고(趙高)"
시황제의 유서(遺書) 및 유언(遺言)을

진시황의 막내아들 호해(胡亥)와 함께 조작합니다.
시황제(始皇帝)의 운구(運柩)가 수도 함양(咸陽)으로 돌아온 후
조작한 유서(遺書)를 증거 삼아

"호해(胡亥)"가 시황제(始皇帝)의 뒤를 이어 진(秦)나라의 황제(皇帝)에 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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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강변에 있는 진2세유적지공원*


호해(胡亥)는 황제(皇帝)에 올랐으나,

자신의 뜻과 관계없이
조고(趙高)가 섭정(攝政)으로,

자신의 눈에 가시였던 황태자(皇太子) "부소(扶蘇)"를 비롯하여
시황제의 자식들 즉 호해(
胡亥)의 이복 형제들을 죄를 만들어 쒸워

모조리 죽여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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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수아비에 불과한 2세황제는

이사(李斯)와 조고(趙高)에게 모든 실권을 빼앗기고
자신은 사치와 향락의 늪으로 빠져버립니다.
조고(趙高)는 황제(皇帝)를 대신해 전권(全權)을 휘두릅니다.
조고의 힘이 막강해지자,
호해를 황제로 옹립하는데 힘을 합친

승상(丞相) 이사(李斯)를
자신의 경쟁 상대에서 밀어내고자 죄를 만들어 쒸워 잔인한 고문(拷問)으로

짓밟아 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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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李斯)는 황제에게

자신의 억울함을 고하는 상소문(上疏文)을 올려보냈으나
이마저 조고(趙高)가 가로채 불태워 버립니다.
결국 이사는 조고에 의해

"요참형(腰斬刑): 작두로 허리를 잘라 죽이는 형벌"에 처해지고
조고(趙高)는 이사(李斯)가 있던 승상(丞相)에 오릅니다.
2세황제(二世皇帝)를 식물인간으로 만들고
실권을 쥔 조고(
趙高)

통일 진(秦)나라를 손아귀에 넣고 황제 이상의 권력을 행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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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상(丞相) 이사(李斯) 동상


이때 "진승(陳勝)과 오광(吳廣)의 난(亂)"
불길처럼 일어나
진(秦)나라는 엄청난 혼란에 빠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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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잠시,

진나라를 망하게 하는데,
단초(端初)를 제공한

"진승과 오광의 난(陳勝吳廣之亂)"을 짚어보고자 합니다.
"진승(陳勝)""오광(吳廣)"
허난성(河南省) 출신으로 둘다 매우 가난한 농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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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두 사람은 진시황제(秦始皇帝)의 아들 호해(胡亥)가

황제(皇帝)를 계승한 해인,
기원전 210년에 변방(邊方)으로 징발 됩니다.
이때 900여 명에 이르는 농민들이 징발되어 지금의 북경(北京)에서 가까운

국경 지역인 어양(漁陽)으로,
인솔자와 함께 떠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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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나라 충신 몽염(蒙恬) 장군 동상


당시는 주로 가난하고 힘 없는 농민들만 변방(邊方)의 수비(守備)를 위해

동원되었는데,
미처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
대택향(大澤鄕)이란 곳에 이르자,
홍수(洪水)를 만나 길이 막혀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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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 2세황제(二世皇帝) 호해(胡亥) 릉(陵)


따라서 도착하라는 기한(期限) 내에

목적지에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처지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당시 진(秦)나라 법(法)은,
정해진 시일 안에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할 경우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무조건 처형하도록 규정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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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승과 오광은 고민에 빠집니다.

"지금부터 죽어라 달려가도 기일내에 도착하지 못해 처형 될 것이고,
도망가도 어짜피 살기도 힘드니...
이왕 죽을 바에야,
이 썩어빠진 나라를 확 뒤집어 놓고 죽는 편이 낫다." 라며

의기투합(意氣投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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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일행들에게 이와같은 진나라 법(法)을 설명하고,
"다함께 일어나

진절머리 나는 썩은 진(秦)나라를 확 뒤집어버리자~!"

선동(煽動)을 합니다.
그러자 겁에 질린 일행 모두가 이에 어쩔 수 없이 호응하자,
진승(陳勝)은

일행들을 인솔하는 관리가 차고있던 칼을 뽑아,

갈길을 다그치는 인솔자(引率者)를

단칼에 죽여버리고,
"변방으로 향하던 방향을 돌려

함양(咸陽)의 황궁(皇宮)을 뒤엎으러 가자"며 외칩니다.
졸지에 징집병(徵集兵)에서 봉기군(蜂起軍)이 된

일행은 마을과 고을을 지나며,
“왕후장상(王侯將相)의 씨(氏)가 따로 있나~!

우리도 인간답게 살아보자~!"는 구호를 외치며,
명분을 크게 써서 들고 나가자
이를 보고 뒤따르는 합류자들이 구름처럼 모여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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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는 지방의 호족들까지 합세하여
전차 1천 대, 졸병 10만에 달하는 대군(大軍)으로 불어납니다.
일이 생각했던 것 보다

엄청나게 커지자,
진승(陳勝)과 오광(吳廣)은

자신들이
당시 이름께나 높았던 항우(項羽)의 할아버지인 "항연(項燕)" 장군과
이미 죽은 진2세의 형인 "부소(扶蘇)"라 칭하며,
신분을 속이고

봉기군(蜂起軍)들을 지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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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자극을 받은

지방의 호족(豪族)과 호걸(豪傑)들이
여기 저기서 진(秦)나라에 반기를 들고 일어서며

세를 규합하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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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대표적인 자들이

"항우(項羽)"와 "유방(劉邦)"입니다.
아무튼 진승(陳勝)과 오광(吳廣)이 이끄는

오합지졸(烏合之卒)의 봉기군(蜂起軍)은,

함양 근교에서
명장 "장한(章邯)" 장군이 이끄는 정부군(政府軍)과의 싸움에서

대패를 시작으로

연전연패(連戰連敗)합니다.
그리하여 장한(
章邯)이 이끄는 정부군에 진승과 오광이 일으킨

농민(農民) 봉기(蜂起)는

결국 진압되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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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진(秦)나라 정치 현실에

환멸(幻滅)을 느낀 "장한(章邯)"

20만 명이나 되는 진(秦)나라 병사들을 이끌고 항우(項羽)에게 투항하여
삼진(三秦) 중 하나인 옹지역의 "옹왕(雍王)"에 봉해집니다.

한편, 그를 따르던 병사들은

"역적(逆賊), 진(秦)나라 출신들이기에 한 놈도 쓸모가 없다"

항우(項羽)는 그들 모두를 무장 해제 시킨 후,

성안에 가두어 문을 잠그고

자신의 병사들을 동원하여

성(城) 위 사방(四方)에서 화살을 퍼부어 모두 잔인하게 죽여버립니다.

"자그마치 20만 명을 그렇게 죽였다 이말입니다~!."

그후 장한(章邯)은

항우(項羽)의 장군이 되어

유방(劉邦)이 이끄는 싸움에서
패하여 결국 자결(自決)로 생을 마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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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우(項羽)와 유방(劉邦)은

엄청난 세를 불리며 각 방향에서 앞을 다투며
함양궁(咸陽宮)을 향해 진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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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같은 긴박한 상황에도

시황제(始皇帝)의 뒤를 이어 제위에 오른 2세황제(二世皇帝)
아버지 시황제에 버금가는

재능(才能)과 포부(抱負)는 고사하고,
조고(趙高)의 손아귀에서 허우적거리며
그가 시키는 데로

잔인하고 포악한 정치만을 일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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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조고(趙高)의 뜻에 반하는 자는

그 누구라도 가차없이 베어 죽였는데,
22명이나 되는

황제(皇帝)의 형제, 자매들을 비롯하여

그 가족 및 가솔들까지 남김없이
잔혹한 "거열형(車裂刑): 머리와 사지를 수레에 묶어

신체를 찢는 형벌"로 죽여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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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조고(趙高)는 이 혼란스러운 기회를 이용해
황제(皇帝)를 없애버리고
자신이 황제(
皇帝)가 되고자 역심(逆心)을 품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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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고(趙高)

자신이 지휘하는 군사들을 이끌고 함양궁(咸陽宮)으로 들어와
사치(奢侈)와 향락(享樂)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식물과 다름없는 2세황제에게
"나라가 이지경이 된 것은

모두 당신의 무능(無能)이니 자결하라"고 다그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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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겁을 먹은 2세황제(二世皇帝)는

"당신이 황제(皇帝)가 되어도 좋으니 목숨만 살려달라"애걸하며

조고(趙高)의 옷깃을 붙잡고 매달렸으나,
조고(趙高)는 아랑곳하지 않고 집요한 압력(壓力)을 가합니다.

압력을 못 견딘 황제는 결국 자결하고 맙니다.
이때 2세황제(二世皇帝)의 나이 22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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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무덤이 바로 이곳

시안(西安) 시내 한복판의 한적한 공원에,
"진이세황제릉(秦二世皇帝陵)"이라는 이름으로

덩그러니 남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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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만해도 이곳은

도시에서 먼 변두리지역이었는데
도시가 점점 커가자 이제는 시가지 한 복판으로 변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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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2세황제(二世皇帝)는

진(秦)나라 역사상(歷史上) 가장 무능한 황제였기에
이사(李斯)와 조고(趙高)가

자신들의 안전를 위해 허수아비왕으로 세운 황제입니다.
결국 제대로 된 정치 한 번 못 해보고
아버지 진시황(秦始皇)이 이룩한

통일 진(秦)나라를 위태롭게 만들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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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唐)나라 최초의 여황제(女皇帝)인

측천무후(測天武后) 개인 정원 전시실


2세황제가 죽자,

조고(趙高)는 곰곰히 생각합니다.
자신이 황제가 된다는 것은,

엄청난 저항을 견뎌내야 하는데...

지금 상황으로 보면 이를 감대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느끼고,
2세황제의 조카인 "영자영(嬴子嬰)"

새로운 진(秦)나라 황제(皇帝)로 낙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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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자영(子嬰)은

기록상에 그 출생이 확실치가 않은 인물입니다.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

"진시황 본기(秦始皇 本紀)"에 따르면,
"호해(胡亥)의 형 아들 즉 진시황(秦始皇)의 손자가 된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이사 열전(李斯 列傳)에서는

"진시황(秦始皇)의 동생"이라고도 적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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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사기(史記) "육국연표(六國年表)"에는
"자영(子嬰)은 호해(胡亥) 즉 2세황제(二世皇帝)의 형(兄)"이라는

기록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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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동진(東晉)의 역사학자 서광(徐廣)은
"진시황(秦始皇)의 조카"라는 설을 주장하기도 합니다.
소설 "초한지(楚漢志)"에서는
진시황(秦始皇)의 자살한 맏아들 "부소(扶蘇)의 아들"로 그려져 있지만,
부소(扶蘇)의 아들이라는 명백한 기록도 사실 없습니다.
자영(子嬰)은 이렇게 여러 설(說)이 존재하는

신비의 인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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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에서 들고 일어난 여러 난(亂)으로

혼란스러운 상황을 보며

조고(趙高)는 고민합니다.
그리고는 당시 세력이 엄청나게 불어났던 봉기군(蜂起軍)의
양대 세력인

항우(項羽)와 유방(劉邦)의 봉기군(蜂起軍) 중에
함양궁(咸陽宮)에 항우보다 먼저 입성한
유방에게 진(秦)나라를 바쳐 자신의 안전을 보장 받으려고

은밀히 연통(聯通)을 넣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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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실을 전해듣은

유방(劉邦)은 조고(趙高)가 못미더웠기에
그의 뜻
을 무시하고

계속 황궁(皇宮)을 향해 밀고 들어갑니다.
이와같은 사실을 파악한 조고(
趙高)

마음을 굳혀

그나마 명망(名望)이 다른 황족(皇族)들 보다 조금 높았던

"영자영(瀛子嬰)을
새로운 황제(皇帝)로 황급히 옹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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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곡강유원지 일대와

호수가 측천무후(測天武后) 개인 정원이었다고 함


이리하여 갑작스럽게 황제(皇帝)로 옹립된 자영(子嬰)은

황제 즉위식(卽位式) 당일,
밤새 갑자기 병이 났나는 핑게를 대고

자신을 데려가려고 온 사자(使者)의 설득을 거부하며

집에서 꼼짝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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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손으로 돌아온 사자(使者)의 보고를 받고

화가 치밀어 오른 조고(趙高)는,
자신이 직접
마차를 타고

자영(子嬰)의 집으로 달려옵니다.
조고가 올 것이라고 미리 예견한 자영(
子嬰)은 자신의 아들과 심복(心腹) 부하들을

집안 구석 구석에 몰래 매복시켜 둔 상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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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자영(子嬰)의 집으로 뛰어들어온 조고(趙高)는,

대문을 들어서자 마자

숨겨둔 심복들에게 붙잡혀 그자리에서 목을 배어 살해됩니다.
조고가 죽자 자영(子嬰)은 조고(趙高)의

측근들 및 가족들을

단 한 명도 남김없이 모두 잡아들여 처형합니다.
그리고 나서 안전이 확보되자

진(秦)나라의 "3세황제(三世皇帝)"에 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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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천하(天下)는 이미

각지의 군벌(軍閥)들이 나누어 차지하고 있는 상태로,
진나라의 영토(領土)는

함곡관(函谷關) 이내로 작아져
통일되기 이전의 영토(領土) 크기로

축소된 상태였습니다.

이런 사실을 파악한 3세황제(三世皇帝)는
스스로 황제(皇帝)의 칭호를 버리고 "진왕(秦王)"으로 직위(職位)를 낮춥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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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유방(劉邦)이 이끄는 봉기군(蜂起軍)은

이미 함양(咸陽)의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고,
진왕(秦王)은

장수들에게 맞서 싸우도록 명령하지만,
진왕(秦王) 자영(子嬰)의 자질이 뛰어났던 것도 아니며

제대로 된 책사(策士) 한 명 없는 초라한 상태였습니다.

따라서 진(秦)나라 병사들은

유방(劉邦)의 유능한 책사(策士)인
"장량(張良)"의 계략(計略)에 농락당하면서 속수무책(束手無策)으로

패배하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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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유방(劉邦)과의 싸움에서 승산(勝算)이 없음을 간파한

진왕(秦王) 자영(子嬰)은
장례식(葬禮式)을 상징하는 백마(白馬)가 끄는 흰 마차에
흰 소복(素服)을 입고 올라,

목에는 진(秦)나라 "옥새(玉璽)"를 걸고서
유방(劉邦)에게 항복하러 황궁문(皇宮門)을 나옵니다.

2세황제 호해(胡亥)가 죽고 나서 진왕(秦王)에 즉위한지

45일 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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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방(劉邦)은 항복(降伏)을 받아들이고

진왕(秦王)과 그 가족의 안전을 보장합니다.
하지만 뒤이어 함양(咸陽)에 입성한

항우(項羽)는,
과거 진시황(秦始皇)이 각국을 잔인하게 멸망시킨 죄 등을 진왕(秦王)에게 물어
진왕(秦王)과

일족(一族)들을 단 한 명도 남김없이 처형시켜 버립니다.
진왕(秦王) 자영(
子嬰)과 함께

진(秦)나라의 모든 황족(皇族)들은

항우(項羽)에게 멸족 당하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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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항우(項羽)는

진시황(秦始皇)이 심혈을 기울여 지었다는
"아방궁(阿房宮)"도 불태워 버렸는데,
그 불길은 꺼지지 않고 석달 간이나 탔다고 하니...
아방궁(阿房宮)의 규모가 얼마나 컷는지 짐작도 어려울 정도입니다.
이리하여 중원(中原)을 뒤흔들며 천하(天下)를 호령하던

파란만장(波瀾萬丈)한

진(秦)나라는

영원히 역사 속으로 사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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